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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월요논단] 100년 전 우리, 오늘의 이주민

작성자 : 아시아문화연구원 날짜 : 26/02/14 11:57 조회 : 17

[월요논단] 100년 전 우리, 오늘의 이주민

 

입력 2025-08-24 18:42

지면 아이콘지면

8월25일, 임정 구미위원회 창립일

오늘날 수많은 이주노동자 구슬땀

인력 수요 그들 없이 채울 수 없어

그럼에도 차별·왜곡된 시선 곳곳에

이주민을 동반자로 인정 선택할때

김구용국 경기도외국인복지센터장협의회 회장·문학박사  김구용국 경기도외국인복지센터장협의회 회장·문학박사

8월25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미국 워싱턴 D.C.에 구미위원회를 세운 날이다. 1919년, 낯선 땅에서 언어도 제도도 다른 현실을 견디며 모인 사람들은 ‘대한의 독립’을 알리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뛰었다. 구미위원회의 창립은 해외에 살던 한국인들이 어떻게 ‘이주민으로서’ 살아가며 고향을 위해 헌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 이주민들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나라를 잃고 고향을 떠난 한국인들은 만주와 연해주, 하와이와 미주로 흩어졌다. 그곳에서 사탕수수 농장, 철도공사, 탄광과 공장에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나 생존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들의 노동은 가족을 먹여 살렸고 독립운동의 자금줄이 되었다. 해외에서 흘린 땀방울이 개인의 생존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로 이어졌던 것이다. 구미위원회는 바로 그 헌신을 제도적으로 묶어낸 상징이었다. ‘고향을 위한 노동’은 곧 독립운동의 또 다른 형태였다.

세월이 흐르며 한국은 더 이상 이주민의 송출국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수용국이자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나라가 되었다. 농촌의 논밭, 산업현장의 기계 옆, 건설현장의 가설 구조물 위, 그리고 돌봄의 일터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구슬땀을 흘린다.

그들의 이유 또한 단순한 생존이 아니다. 고향의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의 학비를 마련하며, 부모의 노후를 지탱하기 위해 이곳에 서 있다. 매달 송금되는 돈은 가족과 마을을 살리고 본국의 경제를 떠받친다. 그들의 노동은 고향 공동체의 삶과 미래를 떠받치는 힘이다.

한국사회 또한 이주민을 필요로 한다. 농촌의 일손 부족, 산업 인력의 공백, 돌봄 노동의 수요는 이미 이주민 없이는 채울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존재는 일방적이지 않다. 우리의 필요와 그들의 필요가 맞닿은 결과이며 이는 피할 수 없는 동시대의 조건이다.

우리가 더 이상 이주민이 아니라는 생각은 착각일 수 있다. 한국인의 해외 이주는 과거의 일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현실이다. 1970년대 중동의 건설 현장과 독일의 광산·병원은 한국인 이주노동의 상징이었다. 고국의 가족을 먹여 살리고 나라의 경제를 일으키는 버팀목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일본의 과수원과 비닐하우스에서는 워킹홀리데이 청년들이 사과와 딸기를 따며 학비와 생활비를 모은다. 호주의 농장에서는 한국 청년들이 뙤약볕 아래 포도와 블루베리를 수확하며 비자 연장과 여행 경비를 마련한다. 미국과 유럽의 전문직 시장에서도 한국인들은 연구자와 전문가로 자리 잡으며 새로운 이주민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100년 전 우리의 이야기는 과거의 기록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 점을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주민’이라는 단어를 낯설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주는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자리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이주민은 때로 ‘불법 체류자’라는 낙인으로만 불리거나, 단순히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된다. 언론은 범죄를 과도하게 부각시키면서 수많은 성실한 노동자의 얼굴은 비추지 않는다. 차별의 언어와 왜곡된 시선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선택해야 한다. 이주민을 단순히 머무는 손님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함께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동반자로 인정할 것인가.

8월25일 구미위원회의 창립을 기억하는 것은 단지 과거를 되새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이주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물음이다. 100년 전 해외에서 고향을 위해 헌신했던 한국인의 삶을 기억한다면 오늘 한국 땅에서 가족과 미래를 위해 일하는 이주민들의 삶 역시 존중해야 한다.

100년 전의 우리를 잊지 않는다면 지금의 그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김구용국 경기도외국인복지센터장협의회 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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